『 정은숙展 』
Jung EunSuk Solo Exhibition
▲ 정은숙, 내가, 여기 있어요
장지에 수간채색, 30x30cm, 2011
전시작가 ▶ 정은숙(Jung Eunsuk)
전시일정 ▶ 2011. 04. 13 ~ 2011. 04. 18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9:00
가나아트 스페이스(Gana Art Space)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19
T. 02-734-1333
www.ganaartspace.com
매혹적인 소통을 위한 암시
주성열(예술철학, 세종대)
정은숙은 삶의 직접적인 내용을 걸러내 예술이 추구하는 본질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짐멜의 표현을 빌자면 실제적인 것에서 미학적인 것으로의 귀환, 즉 삶에 편입되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도록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물론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반영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세계를 탐색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환영적인 공간에 몽상적 사물과 동화적 이야기로 가득하던 이전의 그림과는 차별을 두고 있다. 묘사와 이야기에 치중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내적인 시선을 겸허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내용은 추상으로 더욱 굳건하여 방향은 잃은 적이 없어 보이고, 표현을 자제하는 겸손함과 자기표현을 삼가는 자존심도 있다. 그림은 서정성 있는 풍경도 아니고 인위적 조형물을 표현한 것도 아니다. 거대한 줄기와 잎 그리고 꽃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모서리 혹은 협소한 부분에 작은 집과 그 집을 지키는 날지 못하는 파랑새가 있는 다소 도식적인 이미지가 전부이다. 전체적으로 맑고 화려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사회적 가치로 꾸며지면서 강제로 제거 되어버린 공간을 예견하는 듯 조금은 불안하다.
▲ 정은숙, 내가, 여기 있어요
장지에 수간채색, 73x91cm, 2011
▲ 정은숙, 내가, 여기 있어요
장지에 수간채색, 91x73cm, 2011
▲ 정은숙, 내가, 여기 있어요
장지에 수간채색, 117x91cm, 2011
잡념 없는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납작한 색면은 과거의 것을 포용해서 새로운 형식을 세우려는 열린 방식이다. 수많은 콤플렉스를 방어하고 행복한 몽상이 욕망을 왜소하게 만드는,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낭만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눈앞에 펼쳐진 구체적인 삶과 초월적인 세계 혹은 유토피아적 환상이 원근법으로 배치되어 있는 인공적으로 구축한 세계를 절대적인 형상과 색으로 무장하고, 묘사가 묘사를 물고 늘어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간결하게 배열하고 단순하게 도식화시킨다. 언뜻 보아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너무 많아서 보이지 않을 뿐, 군중 속의 고독한 자는 군중이 벽으로 보인다. 꽃은 사람 집단의 모양새, 그들이 뽐내는 성공일 것으로 그 이면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파랑새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소통을 지향하는 파랑새의 외침이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자기반성을 통해 그려지는 그림은 감정에 인색하고 많은 것을 생략한다. 삶의 성찰이 초라해서가 아니라 말을 아끼거나 미래가 그렇다고 전하려는 것이다. 알레고리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진정한 세계의 시공을 버리거나, 사소한 엠블럼들이 어느 순간 구슬 구르듯 한 곳으로 모여들어 폭력적인 구세주를 향한 응답 없는 기도 같은 생명력이 제거된 화려함만을 보는 듯하다. 물론 간절함, 진정성 등이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기는 하겠지만 넓은 시야를 가짐으로써 작가나 감상자에게 적극적인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